2013년 사목방향과 기본계획

2013년 사목방향과 기본계획
“예수님을 만나자, 따르자, 전하자!”



주제성구

『로마 10:14-15』
믿지 않는 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어 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전도자로서 파견 받지 않고서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는 말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사목방향


교회창립 109년을 맞이하는 수원교회는 선교 110주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이 사명, 이 움직임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곧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나를 선택하셔서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새로운 한해를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수원교회는 남부 교무구의 중심교회로서의 그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교 초기의 열성적 사명감에서 조금은 나태한 모습으로 2000년대를 맞이하였습니다. 때문에 이제는 성장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올 한해는 표어인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라는 말씀으로 모든 초점을 ‘교회성장’에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다른 누가 아닌 나부터 시작하는 선교 활동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수원교회는 ‘교회성장’이라는 절박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 할 것입니다. 모여서 기도하고, 나가서 선교하라는 성서의 말씀이 우리 수원교회에서 이루어지기를 함께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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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란?

대한성공회의 역사 그리고 지금
(전통과 영성, 합리적인 신앙과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


아름다운 전통과 깊은 영성,
합리적인 신앙의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

성공회라는 명칭는 '하나이요, 거룩하고(聖), 공번되고(公), 사도적인 교회'라는 교회에 관한 신앙고백 가운데 성(聖)과 공(公) 두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 밖에 영국 국교회, 영국 성공회, 앵글리컨 처치(Anglican Church)라고 하며, 미국의 성공회는 '주교 감독제 교회'라는 의미의 에피스코팔(Episcaopal Church)이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근세 영국의 해외 진출에 따라 성공회는 전세계로 확대되었으며 세계 성공회 공동체에 속한 모든 교회를 일컫고 있습니다. 세계 성공회는 중앙헌법이나 연방적인 통치 체제를 갖지 않으며 나라마다 독립된 관구나 관구군을 갖고 독립적인 헌장과 교회법 체계를 갖추어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규모가 적어 독립관구가 되지 못하는 일부지역은 켄터베리관구로 포함됩니다.

성공회는 세계 160여개국에 약 7000만명의 신자가 있으며, 38개 관구와 500여개의 교구가 서로 일치를 이루며 유기적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영국 캔터베리 대성당

성공회(聖公會)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부패해가며 '왕중의 왕'으로서 무한한 권력을 휘두르자 루터, 위클리프, 칼빈 등 종교 개혁가들은 부패한 로마 교황에 대항해서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교회체제를 부정하고 "오직 성서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총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교회의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이즈음 영국에서도 교황이 부과하는 과중한 세금과 지나친 간섭, 성직자들의 권위, 신비에의 지나친 의존 등으로 인한 신앙의 정체 등을 타파하고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 보자는 기운이 일어나며 로마 교황과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의 희생 속에서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헨리 8세의 이야기도 로마로부터 영국이 독립하기 위한 계기였고 새로운 교회가 태동되는 복잡한 과정 중의 일부입니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신앙 선조들의 사려깊은 고민 끝에 16세기에 이르러서 지금의 성공회가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성공회가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갖추면서 영국의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몇 가지의 특정적인 모습들이 교회의 요소들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1. 당시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로마카톨릭의 요소가 배제되고 민주적이고 이성적인 전통, 높은 도덕적 품성을 요구하는 사상과 철학을 받아들였고
  2. 전통과 기본적인 권위(교회질서)마저 무시하는 개신교적 요소도 배제되었습니다. 또한 방언만 있고 예언은 없는 교회의 모습도 배제되었습니다.
  3. 사도시대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질서(주교제를 비롯한 삼품성직)와 교부들의 신앙고백의 전통을 계승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의 예전을 보다 합리적이고 아름답게 그리고 성직자와 회중이 함께하는 예전으로 개혁했습니다.
  4. 개신교 종교 개혁가들이 주장한 성서, 은총, 말씀의 요소들을 수용해서 예전 중에 성서를 가장 많이 읽는 교회가 되었고 말씀과 성예전이 조화를 이루는 예전을 이룩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카톨릭적인 요소와 개신교적 요소의 장점들이 민족주의적 요소와 결합된 교회가 성공회입니다. 합리적이고 거룩한 교회를 이룩한 성공회는 세계의 많은 신학자들이 교회일치의 모델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성공회와 영국 국교회와의 관계

성공회가 영국에서 시작된 관계로 성공회를 영국 성공회(국교회)로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성공회는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세계 각지의 성공회 공동체의 연합이며 영국 성공되도 이중 하나일 뿐입니다. 따라서 영국 성공회가 세계 성공회를 대표하지 않으며 다른 성공회 공동체에 대해 명령을 내리거나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영국 성공회의 수장인 켄터베리 대주교는 세계 성공회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합니다.

성공회는 전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대표자들이 모여 결의문을 채낵하고 그 내용은 전 세계 성공회에 권고되지만 구속력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성공회 조직도



대한성공회의 역사

대한성공회 탄생 - 고요한 주교

대한성공회를 개척한 고요한 주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공회가 소개된 것은 중국에서 파송된 중국인 전도사 두 명이 김해를 중심으로 한 경상남도 일대에서 교리와 신앙을 전파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당시 노력의 결과로 영국성공회에 의하여 한국 선교가 결정되고 1889년 11월 1일 영국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조선 교구의 첫 교구장으로서 고요한 주교(Charls John Corfe)가 주교 서품을 받고 동역자들과 함께 1890년 9월 29일 인천항에 도착하면서 한국 선교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선교의 시작 - 의료와 교육기관

이 땅에 첫발을 디딘 선교사들은 의료선교를 시작으로 서울에 성베드로 병원과 성마태병원, 인천 최초의 양의 병원인 성누가 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아원을 1893년 서울 정동에 설립하는 한편, 선교활동을 위한 성경의 번역과 출판은 물론 신앙서적을 발간하는 문서선교를 전개하였습니다.

강화와 수원 진천 등지에 진명학교 또는 신명학교로 불리워지는 초등학교를 설립, 1914년에는 성직자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성미가엘신학원(현재 성공회대학교의 전신)을 설립하였습니다. 또한 수도회로서 성가수녀회는 1925년에 설립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1900년에 본격적으로 건축한 강화읍 성당은 전통적인 한국의 사찰 형식을 빌어온 최초의 토착화 성당이었으며 이러한 한국 건축 양식의 교회로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성당은 강화 온수리, 청주, 진천 등 여러 곳에 있습니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성공회가 처음부터 지켜왔던 토착화 신학의 표현이었습니다. 1919년 3.1운동에는 병천을 비롯한 각 지역에서 성공회의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40년에는 일제에 의하여 모든 선교사들이 강제 출국을 당하는 비극과 함께 성미가엘 신학원이 강제 폐교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1950년대 이후의 대한성공회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어려움은 계속되었고 6.25 동란을 겪으면서 6명의 성직자와 수도자가 공산군에 의하여 희생되는 가운데 경제적인 고난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 후 1956년에 대한성공회는 새로운 교구장으로서 김요한(John Daly)주교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선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영등포와 강원도 황지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봉사, 상담, 복지, 교육사업 등의 선교활동을 펴서 산업선교의 효시를 이루었습니다.

둘째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가입하여 일찍이 벌려왔던 교회일치운동에 기구적인 참여를 하게 되었으며,

셋째로 전후의 어려운 사회 상황에서 기아해방운동을 벌여 자활마을의 개척과 음성 나환자의 정착촌을 세우는 등 사회복지활동에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러한 대한성공회는 1965년에 새로운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서울과 대전으로 교구를 분할하고 최초의 대한인 서울교구장으로 이천화 주교를 선출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한국인의 지도력 아래 한국의 교회로 새롭게 재편되는 계기를 맞이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974년에는 부산교구를 신설하여 세계성공회 안에서 하나의 독립된 교회로 공인되는 발판을 만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의 선교공동체

1970년대의 대한성공회는 반유신을 비롯한 민주화와 인권회복을 위한 선교와 함께 장애인을 위한 성베드로학교를 개설하는 등 활발한 선교활동을 벌여나갔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에 인권회복을 위한 집회와 다양한 민주화 프로그램의 중심이 되어 온 바 있는 서울 대성당은 특히 우리나라 민주화의 분수령을 이루었던 1987년의 6.10 민주화 항쟁의 시발지가 되어 전국으로 확대되어 갔으며 에큐메니칼 운동의 거룩한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또한 1980년대에 주목할 만한 일로서 성공회가 벌여온 바 있는 "나눔 운동"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빈민선교나 도시선교와는 달리 스스로 마을 공동체를 조직하고 자활사업체를 조합형식으로 만들어가며 교회를 통하여 서로 가진것을 나누면서 미래를 열어가는 선교활동입니다. 성공회는 현재 전국에 7개의 "나눔의 집"을 운영하면서 선교와 생활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현재의 대한성공회

오늘날 대한성공회는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 회원교회로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우리는 다만 기구적인 일치를 도모하려는 것보다는 선교적 협력과 일치를 이루어 가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국천주교나 한국정교회와도 별도의 대화와 협력관계를 지속해 왔습니다.

이와 함께 학생 선교를 위하여 한국기독학생총연맹에 참여하고 있으며 청년선교를 위하여 YMCA와 YWCA에 참여하고 있으며 교육활동을 위하여는 연세대학교 이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며, 성공회대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선교연합기구인 기독교방송, 대한성서공회, 대한기독교서회 등에 이사를 파송하여 방송선교와 성서의 반포 그리고 문서연합선교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대한성공회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에큐메니칼 운동을 이끌어 가고 있는 교회의 하나로서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열린 교회'이며 정직하고 정의로운 미래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는교회입니다.

대한성공회는 아직도 수적으로 참 미약합니다. 6.25전쟁 이전까지 북한에 있던 많은 교회를 잃은데다가 일찍이 너무나 엄격한 성직자 양성 프로그램으로 인하여 충분한 성직자를 길러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세계 162개국에 퍼져있는 약 1억의 성공회 신자들과 교류하면서 이 땅에 참사랑과 진리가 이루어지는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는 열 사람의 의인을 만들어 내고 마침내 교회가 하나가 될 날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성공회는 전국에 100여 교회, 약 5만명의 신자가 있으며, 3개 교구는 각 교구를 중심으로 교회 발전과 사회복음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1990년 9월 29일 대한성공회는 선교 100주년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 겨레의 생명"이라는 주제 아래 겨레에게 생명을 전하고 민족의 평화 통일을 위하여 일하는 교회가 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1992년 9월 29일 관구헌장 선포식을 갖고 1993년 4월 16일 초대관구장 취임식과 함게 독립 관구로 승격하면서 겨레예 생명을 주고, 민족과 함께 하는 새 시대의 교회로 거듭나게 된 대한성공회는 2천년대의 마지막 10년을 '복음화 10년(Decade of Evangelism)' 기간으로 정하고 새 시대를 주님께 봉헌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기 위하여 힘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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