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이야기

성공회 이야기
(성공회와 역사 그리고 사람들)


헨리8세 이야기

헨리 8세

 성공회에 대해 아예 모르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헨리8세가 이혼하려고 성공회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공회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엄밀히 따지면 사실과 다른 이야기 입니다.

 헨리8세는 매우 보수적이며 열성적인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성공회가 태동되기도 했지만 그 스스로는 죽을때까지 가톨릭의 전통을 지켰습니다.

 형수와 결혼했던 헨리는 결혼이 성경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여 형수와의 결혼을 허가한 교황의 처사를 취소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교황과의 정치적인 문제로 거절당하여 결국 교황의 관활에서 벗어나 잉글랜드 교회의 허가를 받아 엔폴레인을 정실로 맞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외부로 드러나는 역사의 단편입니다.

 좀 더 실제적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잉글랜드는 독립적인 민족교회가 있었으며 성서를 스스로 번역하는 등 로마 가톨릭 교회와는 다른 기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가 부패해 감에 따라 교회와 국민의 저변에는 새로운 영국교회의 태동을 요구하고 준비하는 움직임들이 점점 퍼져나갔습니다. 또한 루터의 사상을 담은 서적이 확산되고 교회 개혁의 움직임이 활발해져 헨리의 뒤를 이은 에드워드의 치세 동안 잉글랜드 교회는 프로테스탄트 쪽으로 개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탄압과 개혁의 과정을 거쳐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에야 비로서 영구적으로 로마교회에서 떨어져 나와 오늘의 성공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헨리8세는 표면적으로는 잉글랜드교회(성공회)를 로마교회로부터 분리한 사람으로 인식되지만 오히려 성공회를 탄압하였고, 실제적인 분리와 잉글랜드 교회의 체계를 정립한 사람은 엘리자베스 1세입니다.

 성공회를 단지 국왕의 이혼 과정을 위한 산물 정도로 보는 것은 매우 단편적이고 오류가 많은 시각입니다.


사제와 결혼

 성직자에는 수도 성직자와 재속 성직자가 있습니다. 수도자 중에는 서약을 하고 수도 생활을 하는 수사, 수녀가 있고 성직을 받은 수사 사제가 있습니다. 재속 성직자는 세속 사회에 나와서 중생과 함께 중생을 위해 일하는 주교, 사제, 부제가 있습니다.

 성공회의 재속 성직자는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 근거는 신약성서입니다. 사도들이 교회를 감독하던 초기 교회 시대에 성직자의 독신제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바울로가 독신을 권하기는 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천주교 역시 독신제도에 대해 신법이 아닌 교회법이라고 결론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이 주신 법이 아닌 교회의 법이기 때문에 고쳐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성공회 워싱턴 국민 대성당 :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곳

 미국 대통령 취임식날 첫번째 일정은 성공회 워싱턴 국민 대성당 (http://www.national cathedral.org) 에서 시작됩니다. 대통령의 이,취임식이 이 곳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미국 성공회 워싱턴 교구 주교좌 성당이며 링컨 대통령의 장례식을 치른 이후 취임 축하 및 조찬 기도회, 대통령 장례식 등이 열리는 곳입니다.

 워싱턴 국민 대성당은 "종교를 뛰어 넘어 누구나 기도할 수 있는, 모든 국민의 행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자"는 취지로 건립이 시작되었으며, 단 한푼의 정부 지원 없이 개인과 기업 등의 후원을 통해 93년의 기간에 걸쳐 건설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백악관 다음으로 좋아하는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투투 대주교 :
노벨평화상 수상자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Desmon (Mpilo) Tutu 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운동에 이바지한 공로로 198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코사족과 츠와나족 부모에게서 태어나 그리스도교 계통 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교사가 되었습니다. 교사직을 그만 둔 후 성공회 교구 사제로 임명되어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신학교에서 강의하였습니다. 1960년대 말 런던으로 유학해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72~75년 세계교회협의회( WCC)의 부의장을 지냈으며, 1975~76년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요하네스버그 대성당의 수석사제가 되었습니다.

 1978년 남아프리카 교회협의회 의장에 임명되었고, 남아프리카 흑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주요 대변인이 되어 비폭력 저항을 강조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경제압력을 가하도록 교역국들에게 촉구하였습니다. 또한 흑인 및 백인 공동체 간의 평화로운 협상을 통한 화해를 모색하였습니다.

 1985년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요하네스버그 성공회 주교로 임명되었고, 1986년 역시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케이프타운 대주교가 되어 160만 명의 신자가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성공회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1982년 강의 모음집 <하느님의 뜻 The Divine inention>, 1983년 설교 모음집 <희망과 고통 Hope and Suffering>이 출간되었고, 1994년의 넌픽션 <하느님의 무지개 백성: 평화로운 혁명을 위하여 The Rainbow People of God: The making of a Peaceful Revolution>는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켄터베리 대주교 :
영국성공회의 대표자

 성공회 관련 기사나 내용을 보다보면 켄터베리 대주교를 언급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켄터베리 대주교는 영국 성공회의 대표자 역할을 합니다. 성공회가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니, 전세계 성공회 대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각 관구의 성공회는 캔터베리와 기본적인 신앙적 입장을 같이 하고 교류할 뿐 지배나 간섭을 받지는 않습니다.

캔터베리 대주교 관사 입구

 세계 성공회의 여러 기구와 협의회는 협의된 사안에 대하여 결의문을 채택하고 그 내용은 전 세계 성공회에 권고되지만 구속력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전 세계의 7천만 성도의 교세를 가진 교단이 어떠한 강제적인 구속력 없이도 문화와 지역적 차이를 넘어서 신앙적인 일치와 교류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신앙의 사랑과 관영이며 성공회의 대표적인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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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의 장점

성공회의 장점
(아름답고 경건하며, 영적인 성공회)


말씀과 예식의 아름다운 조화

성공회가 종교걔혁 이후 400여년 동안 유지해왔던 자랑스러운 유산 중 하나는 아름답고 위엄있는 예배였습니다.

이 예배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많은 부분이 비슷하여 가톨릭 및 성공회 예식에 경험이 없는 새신자나 개신교 성도들은 처음에는 이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습니다.

성공회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말씀과 예식의 아름다운 조화를 높게 평가합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엄격한 예식과 개신교의 말씀 위주의 방식은 말씀과 전통에서 오는 깊은 영성 중 한 부분을 망각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습니다.

성공회의 감사성찬례(예배)는 오랜 전통 속 에서 다듬어져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깊은 예배로 초대합니다. 동시에 말씀의 전례를 통해 성서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올바른 삶으로의 방향을 나누어 줍니다.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나눔

성공회는 그리스도교 교단 가운데서도 무엇보다 "신앙의 생활화"를 강조한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성공회가 예전(예배와 기도)를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신앙을 우리 몸에 배게 해서 몸으로 "살아가는" 신앙 생활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탓에 성공회는 "교회"에 대한 개념을 아주 폭넓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는 신자들만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하시는 모든 곳이라는 신념과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 속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와 경제적 관계안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공회는 이런 소외된 사람들이야 말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절급한 분들이라고 보고 이 분들을 위한 선교와 도움에 누구보다도 앞장 서 왔습니다.

특별히 성공회는 이러한 신앙의 생활화 안에서, "자기 교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사회에 보살핌의 손길을 펴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에도 귀감이 될만 한 것이거니와, 성공회도 다른 종교의 이러한 훌륭한 신앙적 실천에서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개인적 구원 뿐만 아니라 사회의 변화까지도 신앙의 영역에 넣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다른 종교와의 대화에도 매우 적극적인 교단입니다.

아울러, 성공회는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놓여 있는 갈라진 틈을 잇는 다리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이른반 교회일치 운동 혹은 에큐메니칼 운동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성공회는 이런 교회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나아가 분열된 사회의 치유를 위해서 힘쓰는 것을 교회의 사명이요 소명이라고 알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평적인 사제와 일반신도와의 관계

성공회의 평신도는 성직자와 함께 교회 운영의 주체로 참여합니다. 단지 교회 운영뿐만 아니라 교구와 관구 대의원으로 뽑히면 주교와 사제단과 함께 교회법을 제정할 수 있고 교회의 제정과 정책을 수립하는 절차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됩니다.

이것이 성공회의 자랑인 의회제도이며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입니다.

이 제도는 성직자의 지도력을 보완하는 것으로 성직자와 평신도는 모두 그리스도의 같은 제자이고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최근 일부 교회에서 믿음을 성직자에 대한 충성으로 변질시키거나, 교회의 권력이 성직자 1인에게 집중되어 발생하는 폐단이 없습니다. 또한 성직자는 정기적으로 이동하여 교인을 사고 팔거나 교회를 세습하는 등의 폐단이 발생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성직자 만으로 또는 평신도 만으로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주종 또는 위 아래의 관계가 아니라 한 분 목자를 모시고 서로 힘을 합쳐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펼쳐나가는 동역자의 관계, 서로 섬기는 관계임을 초대 교회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 일치를 위한 성공회의 노력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는 수많은 교파로 분열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외형적인 차이일뿐,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교파는 한 형제요 한 자매로서 각기 교파 나름대로 그 교파 만이 갖는 독특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오랜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 장점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 장점을 보고 교파를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성공회도 초대교회부터 오늘에 이르는 사도적 전통과, 16세기 이후 개혁교회로서 쌓아온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형성된 독특한 장점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공회 신앙의 기준이 되는 교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1888년 전세계 성공회 주교들이 모인 람베스 회의에서는 성공회 신앙의 기준을 다음 4개 조항으로 정리했습니다.

  1. 구약과 신약 66권을 하느님의 계시된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2.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을 통해 신앙을 고백한다.
  3. 세례와 성찬례를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사로 받아들인다.
  4. 교회의 직제로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주교, 사제, 부제의 세 성직을 받아들인다.

성공회는 어떤 교파라도 이상의 4개 조항을 믿는다면 형제교회로 상호 일치와 협력의 관계를 이루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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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란?

대한성공회의 역사 그리고 지금
(전통과 영성, 합리적인 신앙과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


아름다운 전통과 깊은 영성,
합리적인 신앙의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

성공회라는 명칭는 '하나이요, 거룩하고(聖), 공번되고(公), 사도적인 교회'라는 교회에 관한 신앙고백 가운데 성(聖)과 공(公) 두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 밖에 영국 국교회, 영국 성공회, 앵글리컨 처치(Anglican Church)라고 하며, 미국의 성공회는 '주교 감독제 교회'라는 의미의 에피스코팔(Episcaopal Church)이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근세 영국의 해외 진출에 따라 성공회는 전세계로 확대되었으며 세계 성공회 공동체에 속한 모든 교회를 일컫고 있습니다. 세계 성공회는 중앙헌법이나 연방적인 통치 체제를 갖지 않으며 나라마다 독립된 관구나 관구군을 갖고 독립적인 헌장과 교회법 체계를 갖추어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규모가 적어 독립관구가 되지 못하는 일부지역은 켄터베리관구로 포함됩니다.

성공회는 세계 160여개국에 약 7000만명의 신자가 있으며, 38개 관구와 500여개의 교구가 서로 일치를 이루며 유기적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영국 캔터베리 대성당

성공회(聖公會)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부패해가며 '왕중의 왕'으로서 무한한 권력을 휘두르자 루터, 위클리프, 칼빈 등 종교 개혁가들은 부패한 로마 교황에 대항해서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교회체제를 부정하고 "오직 성서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총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교회의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이즈음 영국에서도 교황이 부과하는 과중한 세금과 지나친 간섭, 성직자들의 권위, 신비에의 지나친 의존 등으로 인한 신앙의 정체 등을 타파하고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 보자는 기운이 일어나며 로마 교황과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의 희생 속에서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헨리 8세의 이야기도 로마로부터 영국이 독립하기 위한 계기였고 새로운 교회가 태동되는 복잡한 과정 중의 일부입니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신앙 선조들의 사려깊은 고민 끝에 16세기에 이르러서 지금의 성공회가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성공회가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갖추면서 영국의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몇 가지의 특정적인 모습들이 교회의 요소들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1. 당시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로마카톨릭의 요소가 배제되고 민주적이고 이성적인 전통, 높은 도덕적 품성을 요구하는 사상과 철학을 받아들였고
  2. 전통과 기본적인 권위(교회질서)마저 무시하는 개신교적 요소도 배제되었습니다. 또한 방언만 있고 예언은 없는 교회의 모습도 배제되었습니다.
  3. 사도시대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질서(주교제를 비롯한 삼품성직)와 교부들의 신앙고백의 전통을 계승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의 예전을 보다 합리적이고 아름답게 그리고 성직자와 회중이 함께하는 예전으로 개혁했습니다.
  4. 개신교 종교 개혁가들이 주장한 성서, 은총, 말씀의 요소들을 수용해서 예전 중에 성서를 가장 많이 읽는 교회가 되었고 말씀과 성예전이 조화를 이루는 예전을 이룩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카톨릭적인 요소와 개신교적 요소의 장점들이 민족주의적 요소와 결합된 교회가 성공회입니다. 합리적이고 거룩한 교회를 이룩한 성공회는 세계의 많은 신학자들이 교회일치의 모델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성공회와 영국 국교회와의 관계

성공회가 영국에서 시작된 관계로 성공회를 영국 성공회(국교회)로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성공회는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세계 각지의 성공회 공동체의 연합이며 영국 성공되도 이중 하나일 뿐입니다. 따라서 영국 성공회가 세계 성공회를 대표하지 않으며 다른 성공회 공동체에 대해 명령을 내리거나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영국 성공회의 수장인 켄터베리 대주교는 세계 성공회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합니다.

성공회는 전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대표자들이 모여 결의문을 채낵하고 그 내용은 전 세계 성공회에 권고되지만 구속력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성공회 조직도



대한성공회의 역사

대한성공회 탄생 - 고요한 주교

대한성공회를 개척한 고요한 주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공회가 소개된 것은 중국에서 파송된 중국인 전도사 두 명이 김해를 중심으로 한 경상남도 일대에서 교리와 신앙을 전파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당시 노력의 결과로 영국성공회에 의하여 한국 선교가 결정되고 1889년 11월 1일 영국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조선 교구의 첫 교구장으로서 고요한 주교(Charls John Corfe)가 주교 서품을 받고 동역자들과 함께 1890년 9월 29일 인천항에 도착하면서 한국 선교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선교의 시작 - 의료와 교육기관

이 땅에 첫발을 디딘 선교사들은 의료선교를 시작으로 서울에 성베드로 병원과 성마태병원, 인천 최초의 양의 병원인 성누가 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아원을 1893년 서울 정동에 설립하는 한편, 선교활동을 위한 성경의 번역과 출판은 물론 신앙서적을 발간하는 문서선교를 전개하였습니다.

강화와 수원 진천 등지에 진명학교 또는 신명학교로 불리워지는 초등학교를 설립, 1914년에는 성직자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성미가엘신학원(현재 성공회대학교의 전신)을 설립하였습니다. 또한 수도회로서 성가수녀회는 1925년에 설립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1900년에 본격적으로 건축한 강화읍 성당은 전통적인 한국의 사찰 형식을 빌어온 최초의 토착화 성당이었으며 이러한 한국 건축 양식의 교회로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성당은 강화 온수리, 청주, 진천 등 여러 곳에 있습니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성공회가 처음부터 지켜왔던 토착화 신학의 표현이었습니다. 1919년 3.1운동에는 병천을 비롯한 각 지역에서 성공회의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40년에는 일제에 의하여 모든 선교사들이 강제 출국을 당하는 비극과 함께 성미가엘 신학원이 강제 폐교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1950년대 이후의 대한성공회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어려움은 계속되었고 6.25 동란을 겪으면서 6명의 성직자와 수도자가 공산군에 의하여 희생되는 가운데 경제적인 고난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 후 1956년에 대한성공회는 새로운 교구장으로서 김요한(John Daly)주교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선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영등포와 강원도 황지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봉사, 상담, 복지, 교육사업 등의 선교활동을 펴서 산업선교의 효시를 이루었습니다.

둘째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가입하여 일찍이 벌려왔던 교회일치운동에 기구적인 참여를 하게 되었으며,

셋째로 전후의 어려운 사회 상황에서 기아해방운동을 벌여 자활마을의 개척과 음성 나환자의 정착촌을 세우는 등 사회복지활동에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러한 대한성공회는 1965년에 새로운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서울과 대전으로 교구를 분할하고 최초의 대한인 서울교구장으로 이천화 주교를 선출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한국인의 지도력 아래 한국의 교회로 새롭게 재편되는 계기를 맞이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974년에는 부산교구를 신설하여 세계성공회 안에서 하나의 독립된 교회로 공인되는 발판을 만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의 선교공동체

1970년대의 대한성공회는 반유신을 비롯한 민주화와 인권회복을 위한 선교와 함께 장애인을 위한 성베드로학교를 개설하는 등 활발한 선교활동을 벌여나갔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에 인권회복을 위한 집회와 다양한 민주화 프로그램의 중심이 되어 온 바 있는 서울 대성당은 특히 우리나라 민주화의 분수령을 이루었던 1987년의 6.10 민주화 항쟁의 시발지가 되어 전국으로 확대되어 갔으며 에큐메니칼 운동의 거룩한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또한 1980년대에 주목할 만한 일로서 성공회가 벌여온 바 있는 "나눔 운동"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빈민선교나 도시선교와는 달리 스스로 마을 공동체를 조직하고 자활사업체를 조합형식으로 만들어가며 교회를 통하여 서로 가진것을 나누면서 미래를 열어가는 선교활동입니다. 성공회는 현재 전국에 7개의 "나눔의 집"을 운영하면서 선교와 생활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현재의 대한성공회

오늘날 대한성공회는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 회원교회로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우리는 다만 기구적인 일치를 도모하려는 것보다는 선교적 협력과 일치를 이루어 가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국천주교나 한국정교회와도 별도의 대화와 협력관계를 지속해 왔습니다.

이와 함께 학생 선교를 위하여 한국기독학생총연맹에 참여하고 있으며 청년선교를 위하여 YMCA와 YWCA에 참여하고 있으며 교육활동을 위하여는 연세대학교 이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며, 성공회대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선교연합기구인 기독교방송, 대한성서공회, 대한기독교서회 등에 이사를 파송하여 방송선교와 성서의 반포 그리고 문서연합선교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대한성공회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에큐메니칼 운동을 이끌어 가고 있는 교회의 하나로서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열린 교회'이며 정직하고 정의로운 미래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는교회입니다.

대한성공회는 아직도 수적으로 참 미약합니다. 6.25전쟁 이전까지 북한에 있던 많은 교회를 잃은데다가 일찍이 너무나 엄격한 성직자 양성 프로그램으로 인하여 충분한 성직자를 길러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세계 162개국에 퍼져있는 약 1억의 성공회 신자들과 교류하면서 이 땅에 참사랑과 진리가 이루어지는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는 열 사람의 의인을 만들어 내고 마침내 교회가 하나가 될 날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성공회는 전국에 100여 교회, 약 5만명의 신자가 있으며, 3개 교구는 각 교구를 중심으로 교회 발전과 사회복음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1990년 9월 29일 대한성공회는 선교 100주년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 겨레의 생명"이라는 주제 아래 겨레에게 생명을 전하고 민족의 평화 통일을 위하여 일하는 교회가 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1992년 9월 29일 관구헌장 선포식을 갖고 1993년 4월 16일 초대관구장 취임식과 함게 독립 관구로 승격하면서 겨레예 생명을 주고, 민족과 함께 하는 새 시대의 교회로 거듭나게 된 대한성공회는 2천년대의 마지막 10년을 '복음화 10년(Decade of Evangelism)' 기간으로 정하고 새 시대를 주님께 봉헌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기 위하여 힘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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