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회 역사 (since 1904)

성공회 초기 선교의 증거 - 수원교회 역사

한국성공회의 초기 선교기인 1904년, 고요한 초대 주교가 1890년 부터 1904년까지 15년간 한국에 처음으로 성공회를 전파하면서 그의 재직 중 마지막 사업으로 벌인 것이 서울, 인천, 강화 다음에 네 번째로 수원지방의 선교를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수원시내에 여러 교파의 많은 교회가 들어섰지만, 당시만해도 한 두 곳의 교회가 있었고, 성공회의 발전은 대단해서 수원 본당을 비롯하여 진위, 노패, 새말, 덕우리, 부대리, 둔포, 객사리, 용모리, 산직말, 배석포, 오산, 용동리 등 12개 선교교회를 설립하여 관할하였으며, 1910년대의 교회 규모를 보면, 사제 2명, 전도사 7명, 신자 700명으로 나타나 있어 당시 성공회의 발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 후에 부대, 둔포, 백석포 등은 본교회로 독립되었으며, 몇 교회는 폐쇄되기도 하였다.

이 중 천리교회는 현재 용인교회로 이름을 바꾸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화성군 성호면 누읍리 선교교회는 60년대까지 존속되었으며, 또한 1924년 전도되어 본교회 혹은 수원교회 선교교회로 있던 교회는 1975년 폐쇄되었다. 1981년 4월까지 있다가 새 성당 건축 때문에 헐린 성당은 1909년 봄 옛 성당을 헐고 그 자리에 성당과 또한 회관 및 부대시설 등이 포함되는 총 400평의 3층 건물을 신축하기 시작하여 1982년 4월에 준공 되었다.

또한 수원교회는 1985년 봄 성당 1층에 진명 유치원을 설립운영(2학급80명)하고 있으며 1986년 11월 22일 이흥준(콜롬바)씨의 봉헌으로 45평의 [경애의 집]을 건축하였다.

한편 수원교회의 역사에서 지나칠 수 없는 사실로는 한국성공회에서 유일하였던 성피득보육원이다. 1898년 서울에서 설립되어 1913년 수원교회 안에 자립잡고 1973년 8월까지 75년 동안 천 여명의 불우 어린이를 길러 사회에 내보냈다. 한국에서의 전쟁고아 문제가 해소되었고 시대성에 더욱 알맞는 사회사업으로의 전환을 위하여 1973년 이 보육원은 폐쇄되었지만, 그 후속 사업으로 현재의 성베드로학교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또한 수원교회는 동수원 지역의 선교확장을 위하여 1990년 용인군 기흥읍 영덕리 582-6에 있는 대지 200평 건평(지하 1층, 지상 2층) 98평의 건물을 1억 6천만원에 매입한 바 있으며, 그동안 부진했던 천리교회의 사목활동을 1992년부터 적극적으로 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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